M2203

A

SOS. 온몸이 분쇄되거나 추락하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엿가락 같이 늘여진 공황상태란. 견디고 싶지 않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페터라니의 글. 대선.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 발발. 코로나로 인한 나쁜 소식들. 어떻게 리듬을 재배치할 지 모르겠는 이 끈적한 불운의 기운들. 자극이 싫어서 담배도 태우지 않는다. 상화를 꼭 끌어안고 지내기 때문에 상화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낮잠조차 실패하는 새로운 하루를 또 살아내기. 아, 그리고 요즘 눈도 굉장히 아프다. 진동하는 영혼을 꽉 잡아둘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꽁꽁 묶고 싶다.

B

모든 사람, 모든 존재는 하나의 강이라는 생각. 내가 아픈 것은 뒤쳐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 일부라는 것. 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조금 나아진다. 그런데도 아플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바보같다는 생각, 죽고 싶다는 생각, 상화에게 지긋지긋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엄마에게 슬픈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

행동 반경이 그리 넓지가 않다. 매일 하는 일돌도, 주변을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드려고 애쓰는 일 뿐이다. 몸을 비틀고,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오래 걷는다.

뭔가를 끊임없이 미루며 당장의 프로젝트에 몰입하는 시간은 모두 지나갔다. 이제 정말로, 나와 내 주변, 주변의 환경을 살피며 차곡차곡 세상을, 체하지 않고 느끼고 싶은데, 하루를 무소속으로 온전히, 스스로의 프로젝트와 가족들만으로 일구어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이제 봄이 오니, 친구들에게 연락이 꽤 온다. 안부를 확인하고 약속을 잡는다. 나만의 동굴에서 나오려니 영 - 생경하다.

신사에 엘카페딸이라는 카페에 와있다. 16분 정도 걸어본 가로수길은 망해서 빈 가게들이 건물들이 구석구석 어떤 실패, 재난, 어떤 강렬한 감정을 내뿜는다 - 마치 기사 한줄에 축약된 부고처럼.이 노트는 가장 힘든 날들만 차곡차곡 모인다.

C

그간 이 노트를 펴지 않았다는 것은 글을 쓸 만한 힘이 있는 정도로 마음이 아픈 지가 꽤 되었다는 것이다. 여전히 화가 나는 일, 서운한 일, 패배감이 드는 일, 영문을 모르겠는 일, 여하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많다. 약간의 성취감, 약간의 미래, 나를 견디게 하는 것은 transforming, 혹은 적어도 기록되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때 뿐이다.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일이 될 수도 있을텐데, 아직 내 글쓰기는 치매와의 술래잡기 수준에 불과하다.

나의 성취, 나만의 자아, 이런 것은 아무 가치 있는 일이 아닌 것. 그런데 나 자신을 깊게 들여다 보는 것, 나 자신의 잠재성과 복잡성의 심연을 탐색하는 일은 우주 전체와 연관되어 있다. 더는 프로젝트 단위로 소진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경주마처럼 가속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숨을 고른다. 나의 몇 개인지 모를 삶을 위해.

D

초등학교 4학년은 굉장히 멋진 나이이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자 먼저 해야될 일은 청소이다. 그 다음엔 구슬을 꿰며 괴담라디오를 듣는다. 4시가 되면 상화가 오고, 같이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한다. 공모를 체크하고, 마감이 있다면 기획서를 낸다. 불안감이 닥쳐오면 시간을 죽인다. 끝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