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담동에 위치한 아동미술 포트폴리오 학원에 2021년 4월 17일에 첫 출근을 했다. 토요일이다. 면접은 그로부터 이틀 전인 목요일이었다. 어린이를 만나면 배우고 깨닫는 게 너무 많아서, 퇴근하면 한두시간은 어떤 어린이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위에 말하느라 시간이 간다. 이제 주변 사람들을 그만 괴롭히고 차분히 일지를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마침 어린이날 즈음이다. 어린이에 대한 글쓰기를 5월 5일에 시작하는 것은 기분 좋은 우연이다.
일을 시작할 무렵의 상태를 되돌이켜보자면 상당히 불안했다. 작년은 대학생활 내내 비영리단체에서 친구와 해왔던 창작 워크샵 기획/교육 일도 차차 그만두고 예술대학 4.5학년으로써 전시와 공연, 그리고 졸업 작품에만 몰입했다. 마감도 미팅도 리허설도 오프닝도 계획 없는 하루하루가 한동안은 눈만 뜨면 행복할 정도로 새콤하게 느껴졌지만 그것도 몇달 지나니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주변인들은 아직 학부에 있거나 이미 대학원을 들어갔거나 혹은 지원 사업을, 레지던시를, 창업을, 취업 준비를, 취업을 하거나, 조용히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그제서야 진지하게 다가온다. 가장 두려운 것은 소수성과 보편성 사이에서의 고립이다. 졸업 후 1-2년간은 쉬면서 진로를 모색해보겠다 가족들에게 선언했지만, 아빠가 투자한 것이 문제가 생긴 데다가 과세 정책 변화로 한동안은 매일 저녁 식탁에서 경제 대책 회의가 벌어진다.
초조하고, 산만하고, 쉽게 짜증이 나고, 밤을 새서 작업에 몰두하다가도 며칠은 무기력증으로 눈만 깜빡거리는 생활패턴에 들어서자 정신을 차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수면제와 안정제를 처방받았다. 의사는 평소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고, 받은 약들은 훌륭히 기능했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창작자는 늦지 않게 약의 도움을 받아보기를 권한다. 대학생일 경우 교내 정신 건강 상담 프로그램 및 의료비 지원을 활용하기를.)
여하간 그런 와중에 240명 정도가 있는 과 전체 단톡방에서, 나보다 1년 먼저 졸업 전시를 치른 사람이 구인글이 눈에 띄었다. 영재/유학 포트폴리오, ㅇㅇ역 근처, 주 2일 파트타임, 시급 상의, 이외 궁금한 점은 문의주세요. 아마 평범한 아동미술학원이었다면 관심이 덜했겠지만 - 학원 위치가 애인의 집과 가깝다는 점, 1:2~1:3으로 소수 정예 과외와 같은 수업을 진행하는 점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수업을 한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면접 날짜를 잡고, 실기력과 선생님 특징이 잘 보이는 포트폴리오를 이력서와 함께 준비해와달라는 전달사항을 받았다.
학원이 있는 동네는 도로도 인도도 아주 넓었다. 이런 곳에 매장을 낼 수 있는 브랜드를 키운다는 건 어떤 성취일지 상상하며 거리에 진입하는데 한켠에는 성인용품샵이 보인다. 남성 고객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 굳이 페니스를 연상시키는 이름 따위를 붙였어야 했을까? 여성과 퀴어의 시선에 기반한 독창적인 토이샵들이 그리워진다. 그래, 이런 게 서울이고 강남이지 - 비싼 싸구려와 값싼 럭셔리의 공존.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진짜'가 강남에 자리잡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특히 청담에서 예술에 관련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이 동네와 조금은 화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있다. 나는 강남에서 자랐지만 솔직히 말해 이 곳을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대학교는 모두 성북구에서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해 동네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게 되면서 그제야 약간의 친분이 생긴 정도이다.
학원은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낮은 상가에 위치한다. 재건축 시기를 넘겼지만 집값만은 치솟는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자라온 입장에서 실망스러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있고 학생들은 대부분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다는 점이 학원 입장에서는 몫이 좋은 것이 아닐까? 오후 3시라는 느즈막한 시간. 차밍벨을 울리고 안으로 들어가니 원장실에는 노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다. 그간은 친분이 있는 또래들이나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과 일을 했었는데, 나는 '아차, 보스가 나이가 많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란 사람이 같은 예술적 지반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있고 그 안에서도 본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소통 가능한 사람이 맞는지 - 스스로의 확장성에 대한 테스트가 되기도 한다.
수업 중인 반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학생들 작업을 모아 놓은 전시 공간을 둘러보기도 했다. 면접자들 명단에는 아는 이름들이 여럿 보였다. 본인의 전공적 역량이나 작업이 상당히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졸업 학교 출신 강사가 전임자가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학원에는 죄송하지만 이거 지원자들이 상당히 오버스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스쳤다. 다들 이렇게 일을 구하고 있기는 하는구나.
워터컬러, 아크릴, 오일, 펜슬, 콘테 등등 평면 작업 위주로 아이패드에 담아갔다. 고3때부터 대학교 2학년 정도까지 작업했던 그림들인데, 오래된 그림을 보여주려니 멋쩍었지만 원장은 회화과 출신이 아니었을까 싶도록 하나하나 찬찬히 살폈다. 평면 작업에 가장 열이 올랐을 때는 최선의 동료와 선생님들과 함께했다. 이제와선 많이도 무너진 기억이다. 언제쯤 그 때의 감각을 재개하게 되련지. 새로운 매체 학습에 밀려 계획은 미루고 또 미뤄지고 있다. 어린이들과 온전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소근육 발달부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글쎄, 예술 교육 노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급여가 적절할까? 페이는 나만의 방식으로 알아서 배우고 챙겨가겠다는 의지로 시작하게 되는데 - 결과적으로 이것은 아주 좋은 작용을 한다. 업무의 연장선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지금 이 글의 탄생처럼 말이다. 내가 받는 금액과 노동량의 수지를 재고 효율을 따지는 것을 기꺼이 멀리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출근을 설레여하고 기다리며 일을 하게 되었다. 상당한 액수를 받을 때에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나의 태도 덕분인지 어린이들이 너무 반짝거리기 때문인지는 아직 헷갈린다.
어린이 예술의 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여행자의 시선을 성실하게 기록해보려 한다. 글이 되지 못한 하루들이 늘어가니 예습/복습이 밀린 우등생처럼 마음이 바쁘다. 이 시국엔 다들 머릿 속으로 여행을 다니고 마음 속으로 학교를 다니기 마련이다.
면접을 본지 이틀만에 첫날은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인수인계를 받는다. 지도하게 될 아이들의 특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재료의 위치를 파악한다. 고등학생들에게 대학교 수준의 과제를 안겨주곤 했던 나로서는 나이대별로 발달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 특히 새롭다. 학습 공간이 내게는 낮고 작지만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어린 남자아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어린이와 어린이 보호자에 대한 유행어가 떠오른다. 2019년의 사회 분위기를 글의 제목으로도 덧글로도 기록하고 있는 페이지를 링크해본다. 〈나는 '맘충', 아들은 '한남유충'... 이렇게 살 순 없었다〉(오마이뉴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시리즈)
한 친구가 내게 '한남유충'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던 날이 있었다. '맘충'이나 '노-키즈존'과도 다른 결이 있으며, 낙태가 불법인 나라의 분노한 여성들에게 한번쯤은 유행할 법한 말이다고 대수롭지 않게 내 의견을 말했던 것 같다. 11세 남자아이가 고층에서 벽돌을 던져 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55세 '캣맘'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 지도 오래지 않았던 때다.
그때 내게, '남자아이'를 떠올렸을 때 그들을 마주하는 건 성인이 된 내가 아니라 10+n년 전에 그들과 함께 교실에 있었던 한 초등학생 여자애였던 것 같다. 모든 남자애들은 나보다 출석번호가 앞이였고, 그래서 가장 먼저 급식을 받았다. 거칠게 행동했고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해도 제대로 훈육을 시도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혹은 '남자애라면 패고보는' 일부 선생님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계도되어 눈빛에 분노가 차는 게 보였다. 나를 지하실로 데려가 '옷을 벗고 어른들이 하는 걸 해보자'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전 세계의 여성들과 아이들은 남자들이 죽어서 자신들이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남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여성과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무시무시하게 가부장적인 힘을 휘두르고, 여성과 아이는 두려움과 다양한 형태의 무력감으로 움츠리고 살면서 자신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 자신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은 남자들이 죽는 거라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집에 오지 않는 거라고 믿는다. 이것이 남성중심주의에 존재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진실이다. - Bell Hooks,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 남성성, 그리고 사랑(The Will To Change, 2004), 2017, 책담)
'어린이의 세계'와 가까이 거주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어린이들을 보기보다는 과거 자신이 경험했던 인물들을 투영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예를 투영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포심과 혐오의 시작이 아닌가. 최악보다는 눈 앞에 존재하는 차선의 인물들 하나하나를 떠올려보기로 하자. 이렇게도 힘들게 자라나는 우리 존재를 가엾이 여기자.
블랙 페미니스트 벨 훅스의 전언에 따르면, 새로운 남자아이들이 "분노 속에 고통과 영혼의 괴로움을 숨기는 것이 진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감정을 인식할 수 있도록, 친밀한 관계에서 도망치지 않도록, 폭력에 반대하고 죽음에 반대하는 영웅이 될 수 있도록, 생존의 핵심이 사랑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그리고 사랑이 배려, 헌신, 지식, 책임, 존경, 신뢰의 결합인 것을 알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해방의 길이다. 남성으로 지정된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벨 훅스가 말한 사랑을, 경험이자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지면을 빌려, 남성으로 지정된 어린이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너네가 '한남유충'이라고 불리는 것을 내심 통쾌하게 여겼던 사람은 또래 남자애들에게 불쾌감을 느꼈던 한 초등학생 여자애였다고. 그 여자애는 자라서 예술가이자 교육자가 되었고,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다만 사랑하는 법을 알려 줄 것을 약속한다고.
어린이들이 심심치 않게 나의 내면 아이를 자극하고, 그런 사실은 당황스럽고도 즐겁다. 어린 시절 나는 무언가가 너무 재밌으면 가진 에너지를 마구 발산하다가 잠도 못 자고 아프곤 했다. 너무 심하게 놀다가 집에 오는 길에 가슴 통증으로 주저 앉은 적도 있다. 지금도 작업에 관련된 생각의 회로가 실행이 따라가지 못하게 반짝거리면 쉽게 잠이 들지는 못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만나고 오면 비슷한 정도로 뇌파가 뻗친다.
즉슨 어린이를 만나는 것은 예상보다 더 창조적으로 신나는 일이다. 쓰지 않던 뇌의 부분들이 자극되어 흥분되기 시작했다. (과열된 신체를 방전시키지 않고 가라앉히는 법은 무엇일까? 성인이 된 나는 주로 흡연과 수면제로 해결하기는 한다만. 앗, 정답은 어쩌면 글쓰기다. 글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과열되지는 않았다는 전제하에)
그들에게 내가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거나 괴짜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우리가 유연히 소통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한 것도 잠시다. 어떤 어린이에게는 좀 괴상스러울 정도로 미술에 진지한 어른이겠지만, 나와 같은 선생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 답지 않은 세상에서 잠시간 숨쉴 틈이 되어줄 수 있을 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혹은 비로소, 어린이들의 공간에서 가장 어린이다운 존재 중 한 명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Your faith in me brings me to tears even after all these years / And it pains me so much to tell that you don't know me that well / And though my love is rare, though my love is true I'm like a bird, I'll only fly away / I don't know where my soul is, I don't know where my home is / And baby all I need for you, to know is I'm like a bird, I'll only fly away
친구 수현은 잊을만 하면 한번씩 나와 애인에 대한 현 상태에 대해 기가막히게 시각화된 꿈을 꾼다.
수현 요즘 강남 서초 쪽에 개도둑이 다닌대. (중략)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끈 꼭 잡고 다녀!
연서 응, 고마워, 건강해...
수현 연서도... 꼭 건강해야해. 건강할거야.
연서 나 아동미술 시작했는데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다
수현 왜왜, 뭐 했어 어린이가
연서 기특하고 대단하고 멋져
수현 꺅
연서 막 6살짜리가 자기가 색 다 골라서 내가 만든 우쿨렐레 무지개로 칠하구, 엄청 꼼꼼히 잘 칠했어
수현 연서야 근데 너 진짜 훌륭한 선생님일 것 같아.
연서 꼬마워.
수현 벌써 귀여워. 너 우쿨렐레 만들었어?!
연서 응, 애기라서 내가 미리 만든 걸로 수업했어.
원래 그 정도 애기는 안 받는데 언니오빠가 다니는 경우 진짜 애기애기도 가끔씩 와.
수현 과거의 나를 현재의 너 학원으로 보내고 싶다...
어린이들에게 혼자 시키면 한나절 걸릴 일인데, 나는 미국식 파운데이션 과정도 밟은 훈련된 어른이니까 10분도 안되서 다 만든다. 앞치마도 혼자 못 매는 게 어린이들인데, 재능을 보이는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붕붕 뜬다. 처음으로 진행하는 1시간 체험 수업이다. 우쿨렐레를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했던 이 친구는 6살이지만 이미 미술 과외를 해보았는지 '저는 집에도 Art 선생님 있어요.' 한다. 가위를 건넸더니 선을 따라 자르는 것도 정확하다. 부원장님이 오셔서 어린이용 안전가위를 줘야한다고 지적을 하시기에 순간 어린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도 모르는 선생님이구나 자책을 했지만, 막상 안전가위를 줬더니 일반 가위를 가리키며 '나 이거 쓸 줄 알아요.' 한다. 아무렴 안전가위보다는 일반 가위가 매끄럽게 잘 잘린다.
초1과 초6 자매와 하는 수업도 맡고 있다. 다른 선생님과 체험 수업 후 나와는 두번째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문득 "그런데 왜 체험수업 때와는 다른 방에서 다른 선생님이랑 해요?" 하고 물으니, 언니가 무심히 대답한다. "난 이 선생님이 더 좋은데." 다른 선생님과 경쟁 의식을 갖을 필요는 없겠지만 짐짓 기분 좋음을 숨기고 있으니 동생이 이어말한다. "음, 저는 누구 편을 들어야할 지 모르겠어요. 그 쌤은 칭찬을 많이 해줬고요. 연서쌤은 제 마음을 잘 들어주고 알아줘요." 편 들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에 이어서 섬세한 관찰이라니, 아, 2연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만들기를 하다가 글루건에 손을 데였다. 어린이가 다친 것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엔 씩씩하게 괜찮다고 하더니 점점 불안해하는 게 보였다. 손을 확인해보니 정말 잠시 물방울이 떨어진 것인데도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다른 선생님들께 알리니 원장님이 확인하러 성큼 교실에 들어오셨는데 어른이 오니 심각한 줄 알았는지 울기 시작한다. 부원장님께 구급약 키트 위치를 확인 받고, '아이들은 피부가 약해서 작은 화상에도 수포가 올라오고 껍질이 벗겨지니 꼭 장갑을 끼고 글루건을 쓰도록 하고, 손에 글루건이 묻으면 절대로 바로 떼어내지 말고 먼저 찬물에 식혀야 한다'고 배웠다.
아이에게 화상 연고를 발라주고 반창고를 둘러 주니 점차 안정이 되는 듯 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제가요, 사실은 별로 안 아팠는데요. 아까는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제가 어떨 땐 그냥 눈물이 나요. 어른들이 그러는데 제가 눈물이 많대요." 3연타, K.O입니다.
눈물이 많다니, 하나도 많은 게 아니야. 그리고 눈물이 많은 건 좋은 거야! 눈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가장 최근에 운 적이 언제냐고 물었다. 언니는 '저는 안 울어요. 최근에 운 적 없어요.' 하더니, 몇번 더 찔러보니 아빠 때문에 운 적이 많고, 그저께에는 학교 애들이 못되게 구는 것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울곤 했어서 어쩌면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그 나이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언제 주로 울고 있지? 영화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애인과 싸우다 울기도 하고, 미술 선생님들과 얘기를 하다가, 또 철학/미학 강의를 듣다가 운 적도 여러 번이다. 아, 작업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운 적도 있었다. 친구들에게 마음이 쓰여 울기도 했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기도 했다. 1년 만에 귀국하셨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자가격리 기간을 또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른도 이렇게 열심히 운다는 사실을 꼭 알려줄 걸 그랬다.
나는 어린이들의 창조력을 키우는 것과 더불어서, 가정 생활이나 학교 생활에서 학대에 준하는 관계가 있지는 않은지 살피는 것이 큰 의무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일일수록 쉽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힘을 길러주고 싶다. 내가 받고 싶었던 미술 수업을 너네에게 해줄게. 잘 그린 그림보다는 내 그림에 집중하는 몰입감과 해방감을 알려줄게. 내적인 SAFE&RADICAL SPACE를 알려줄게.
내가 어린이들보다 몸도 크고 어른이라서 배려도 해줄 수 있고 도와줄 수도 있고 그래서 너무 좋다. 어린이 때는 잘하지 못했던 일이다. 동생이 있는 큰 어린이들이 작은 어린이들을 잘 나뤄서 조금 질투가 난다. 선생님은 그런 거 잘 모르는 외동이지만 조금만 기다려, 열심히 따라갈게.
연서 들어줘서 고마워. 위대한 어린이의 세계.
수현 아기들은 정말 순수한 거 같아.
연서 9살 짜리 발레복 같은 거 입은 여자애였는데
꽃을 만들더니 꽃 머리 부분 보고
뚝배기 깨야된다고 해서 식겁했잖아
수현 아 그 아기 나 같은데
연서 완전 영적으로 맑아지는 알바임
수현 정말 좋은 알바다. 귀한 알바. 알바 보통 영혼 탁해지고 영적 능력 깎이는데.
연서 행복해 수현.
수현 연서두.
연서 영 맑은 얘기 있으면 또 전하러 연락할게. 같이 맑아지자.
수현 연락해!
토요일 수업은 그럭저럭 별 일이 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며 끝났다. 매주 강렬하게 어린이들을 만나 왔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이 일이 별일없이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들자 어서 기록하고 작업해야한다는 조급함이 엄습한다. 수업 후 망각 곡선을 따라 곧바로 예습복습을 하지 못한 우등생이 느낄 불안감과 비슷할까. 나는 어쩌다보니 청소년 때보다 더 열심히 예습 복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학교 수업, 대학 수업, 그리고 실무를 비교해본다면 나이가 들 수록 더 재밌는 공부를 하게되는 것은 맞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지속할 역량이 키워져오기 때문인지.
퇴근 후엔 곧바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S가 학원 앞으로 데리러왔고,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S는 공황이 오기도 했다. 점점 빈도 수가 줄어들었었는데 새로 바꾼 약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S는 말한다. 조금이라도 어둡고 좁은 곳으로 몸을 접는 S를 안는다. 피부로 위로를 전하기 시작한다. 목덜미를 쓰다듬거나 어깨에 압박감을 주기도 하고 등을 안마하기도 하면서. 코로나 발발 이후 첫 아트나인 방문이었다. 분명 나의 문화 공동체에서 별점 4점 이상을 줄 것이 상당히 명백한 영화를 관람한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터 나는 몸이 들썩거리고 틀어지기 시작했다. 영화가 끝나자 녹초가 된다.
영화관 건물 왼켠의 익숙한 장소에서 흡연을 한다. 울고 싶기도 하고, 발로 땅바닥을 펑펑 두들기고 싶기도 하고, 폴폴 뛰고, 사실 이런 이상 감각은 항상 종아리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S가 몸을 낮추고 다리를 안아주자 상체에 접촉하는 것보다 배는 나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초여름, 갑자기 떨어진 밤 기온에 옷이 얇다고 S는 걱정을 했지만 이럴 때 추운 것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에너지가 지나치게 고갈되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여유있게 나누는 기술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일이다. 학원에서 너무 많이 서있거나 너무 많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요령이 없다.
무엇보다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굉장한 욕구가 목젖을 죄였다. 꼭 필요한 말은 귓속말을 하듯이 전했다. 한 어린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님 이제부터 말하지 마세요!! 조용히 좀 하세요!!” 나는 의연히 그 친구에게만 목소리를 속삭여서 마치 비밀 얘기를 하듯이, “할핬허.” 하고 답했던 것 같다. 농담이 통했는지 어린이가 웃었다. 다른 학생에게 이런 저런 지도의 목소리를 낸 후에 다시 그 어린이에게 고개를 돌리고, 더 과장되게 사실은 커다랗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선생님 하직도 말하지마?”했더니 “아니에요. 이제는 말해도 돼요!!”하곤 멋쩍어한다. 하지만 어린이야, 선생님은 히제 정말 말흘 하기가 싫허졌허. 할 수가 헚허.
집에 가서 S의 전신 안마를 받았다. 나는 내가 조금 어린이가 되어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S와 뽀뽀를 하는 건 좋았지만 애무를 주고받고 싶진 않았다. 입맛이 없었지만 오직 라면이 먹고 싶었다.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즉각적인 방법은 스킨쉽 다음으로 식사이니까, 몸이 필요로 하는 대로 따른 건지도 모른다. 탱글탱글한 라면과 시워언한 깍두기로 야식을 먹고나니 조금씩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는 그제야 이 모든 고갈의 원인이 될 만한 사건들의 실마리가 풀려나온다.
어린이들이 몸이 너무 작아. 그 작은 팔에 소매를 걷어주는 순간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리플레이 돼. 크기가 내 것의 1/4도 안돼. 반칙을 하고 있는 기분이야. 나도 어린이들과 같은데, 나만 몸이 크고 나이를 먹어서 안전해진 느낌이야. 원장은 애들이 엄살을 부리고 있다고 해. 한 어린이가 순간접착제에서 난 열에 손을 데였는데, 말을 잘 안 듣는 애였어. “아파요. 따가워요.” 말을 하는데 원장과 부원장이 무시하는거야. 가만히 지켜보다가 손을 한번 보자고 했더니 정말로 빨갛게 부어있었어. 수포가 생길락 말락 했지. 찬물에 먼저 손을 씻게 하면서 아프면 꼭 선생님한테 바로바로 말 하라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오네. “말했잖아요. 계속 말했잖아요. 펄쩍펄쩍 뛰기까지 했잖아요.” 이 친구의 행동은 죄다 엄살이 되었기에. 나는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 다음에도 참지말고 그렇게 바로바로 말해줘야 해.”하고 사과를 하고 다짐을 받아놓을 수 밖에.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고 다시 작업을 하게 했다. 또, 그림이 잘 안풀려서 눈물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어. 괜히 나까지 몰래 눈물이 났지. 그럴 땐 선생님이 그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주면서 많이 도와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미술 수업은 지금 여기서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 시간이어야하는데, 부원장은 “이거 완성하면 니가 하고 싶은 거 1시간동안 하게 해줄게”라며 수업은 벌이고 보상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을 하지. 또 원장은 이렇게도 말했다. 애들에게 잘 대해주는 건 좋지만 통제가 안되기 시작하면 난리가 난다고. (마치 자연재해처럼 말하네) 요새 애들은 가슴이 안크고 머리만 커서 선생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으려고 한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건가? 그런 말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그 희고 무력한 애들이 어떻게? 애들과의 기싸움은 다만 영혼으로 대화하면 될 일이다. 그걸 어른만이 할 수 있는 권력과 폭력으로 해결하라는 말은 너무나 상처가 된다.
하지만 이상감각은 항상 아이디어와 함께 오는데, 그걸 잘 정리해 메모할 힘이 전혀 없기때문에 죄다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함께한다. 그래서 전신 안마를 받으면서 메모장에 끊임없이 모든 키워드들을 적었다. 이걸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 - 어디로 하지? 그리고 재료는 무엇으로 하지? 어떤 말들이 들어가지? 어떤 거시 구조와 연결되지? 그걸 마구마구 적었다. 마구마구 마구마구 마구마구.
바느질을 못하게 한 학부모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각주: 우리 아이한테 세탁소 일 같은 거 시키지 말라고 컴플레인을 걸었던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행주에 쓰는 가제 천과 재봉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드락, 그리고 클레이, 그리고 종이, 그리고 재활용품들 … 어린이들이 쓰는 저항 낮은 재료들과 저항 높은 재료들을 곱씹어본다.
출근을 내심 기다리게 되는 알바가 있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심코, "아, 출근하고 싶다." 내뱉게 된다. 물론 일주일에 이틀 밖에 나가지 않는 덕분이기도. 더 출근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거리를 두고 있다. 개인 작업 시간과의 균형이 내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첫째로는 어린 시절의 스스로와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면 아이' 개념에 따르면, 누구나 마음 속에는 희고 무력했던 어린이의 자아가 남아있다. 나는 지금 현재 이 시간에 어린이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수없이 많은 시간대의 어린이들을 투영해 본다. 엄마의 어린 시절, S의 어린 시절,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을 본다. 지켜주지 못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고 여린 몸을 느즈막히, 멋진 시차를 두고 만난다. 그리고 둘째로는, 멋지지 못한 어른들을 닮은 어린이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리라고, 그러니까 어른들을 너무나도 견디지 못해서 눈 앞의 어린이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감히 단정지어 본다.
아침엔 유독 몸이 무거웠는데 S가 집 앞 카페에 앉아있다며 연락을 해왔다. S는 문득 "너 반고리관이 어디쯤 있는 줄 알아?"하고 묻는다. 생물이라곤 고등학교 1학년이 마지막, 해부학 지식은 인체 뎃셍을 위한 뼈와 근육이 전부인 내게 그런 걸 묻다니,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전공으로 서로를 시험에 들게 하는 사이니까. 한 시간 정도 단골 체인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니 점점 관심을 갖고 수업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에게 신체에 대해 그려보게 하면 어떨까?"
금요일은 세 시간씩 두 타임을 수업한다. 첫 타임 학생들은 나를 괴담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듯 하다. 미술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한다. 사실 진짜 무서운 얘기를 해주면 어린이들이 분명 힘들어할 것이고, 억지로 안 무서운 얘기를 하자니 서로 김이 빠진다. 그래서 지난 번엔 괴담 대신 애인과 무섭도록 싸운 얘기를 해줬었는데, BRAVE로 별명을 붙여볼까 싶은 초등 2학년 남자애는 "그건 무서운 얘기가 아니라 슬픈 얘기네요"하곤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곤 한다. 재밌게 들었는지 그 얘기를 똑같이 또 해달라는 소리도 한다. 할머니에게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해달라고 조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나는 마음이 조금 두근거렸는데, 기존 멤버 한명이 결석을 하고 그 자리를 처음 보는 학생 한명이 채우는 바람에 새로이 신경을 쓰느라 얘기를 다시 풀어놓지는 못했다. BRAVE는 싸우곤 다시는 안보고 있는 친구가 있다고 한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여서 아주 오래된 친구인데, 절교하게 된 것이 많이 속상한가보다. 더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다신 안 봐요. 그게 끝이에요. 더 할 말도 없어요."하는 말 이후로는 그만 수업에만 집중해버렸다, 이런.
내가 하고 싶다. 맘이 울컥울컥. 스케치가 좋았는데 막 다 칠해서 상처받았다. (각주: 충분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들이 스스로의 작업을 거칠게 망쳐버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상처를 받았다.)
선생님은 여자에요 남자에요? 얘들아 LGBT하자
아이들이 이제 조금씩 파악이 되어간다. 무언가를 슥 시도해보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긴장관계를 주고 받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원한 주제나 재료, 형상을 다루고 있는데에도 고전하고 있는 건 주로 재료의 저항 때문인 경우가 많다. 모든 재료는 어떤 개입을 해야 재료가 원하는 곳에서 고정되는 지를 인내심을 갖고 실험하고 관찰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어떤 개입을 해야 재료가 작업자의 개입 이상으로 섞이고 발산되는 지까지 알고 활용할 수 있다면 준수하다.
클레이가 가장 쉽다. 저항이 가장 없기 때문이다. 보다 무거운 지점토는 서로 맞닿았을 때 잘 붙지 않고, 금이 생기기도 쉽다. 보다 무겁거나 진지한 점토들 - 흙이나 종이죽, 석고, 피규어용 점토 등은 점점 더 다루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매체의 저항과의 긴장 관계를 다루는 감각을 잘 익히기만 한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우드락이 가장 쉽다. 박스지는 칼과 맞닿았을 때의 저항을 다룰 줄 알아야 다루기가 쉬워지기 때문에, 칼이 능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조금만 금을 내도 손으로 부러뜨릴 수 있는 우드락이 더 편하다. 하지만 박스지로는 더 견고한 뼈대를 만들 수 있어 관상용보다는 직접 만지고 놀 수 있는 단단한 장난감을 만들기 좋다.
철사도 마찬가지로, 저항이 적게 나온 공예용 피복 철사들(얇은 철사 위에 pvc 튜브를 덧씌워 두께에 비해 구부리기가 쉽도록 나온 재료), 푹신한 철사 등이 가장 쉽고, 보다 두껍고 무거운 철사들은 단단한 뼈대를 만들기에는 최적이지만 재료의 저항을 견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어린이 작업자에게는 쉽게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물감의 경우에는 물을 거의 섞지 않은 아크릴이 가장 쉽다. 아크릴은 대부분의 표면에 점성있고 플랫하게 붙어버리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클레이와 비슷한 물성을 갖는다. 표면이 허락할 경우엔 더 쉽게 색연필/싸인펜/마카를 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접착제의 선정이 생각보다 많이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가장 쉬우면서도 깔끔하게 작업할 수 있는 건 글루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글루건 심이 녹고 굳는 온도와 시간에 대한 이해가 어려운 어린이들에게는 여전히 복잡하고 심지어는 뜨거워서 무서운, 그런 도구다. 연결하기에 대한 이해가 높은 학생들은 오히려 글루건같은 쉬운 연결재를 지양하도록 지도하는 게 좋겠지만, 오히려 접착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학생들은 스카치 테이프나 마스킹 테이프, 심지어는 박스 테이프까지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것이 - 재료의 물성에 부딪혀 원하는 형상에 아예 접근조차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성장과 성취감을 준다는 것도 깨달았다. 강한 접착까지는 필요 없는 경우 목공풀을 쓰게 하기도 하고, 강한 접착이 필요할 때는 계획을 세우고 모양을 오리는 데까지만 어린이에게는 맡기고 조립하는 과정은 선생님 손을 많이 거친다. 클레이가 쉬운 재료인데는 재료 자체의 점성 때문에 접착제가 필요없다는 이유도 크다. 접착제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섬세함이 필요한 일이다.
재료의 저항에 대한 인내심과 물성에 대한 관찰 능력은 어린이마다 놀랄만큼 다르다. 특히 재료의 저항에 대한 인내심은 모든 작업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어린이들의 발달 정도에 약간의 도전이 되는 정도로만 재료를 소개해주고 인내심이 바닥나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선생님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어린이 작업자에게 재료 다루기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1. 아주 쉽게 조형이 가능한 가장 가벼운 재료
2. 약간은 까다로우면서도 익숙해지면 괜찮은 재료
3. 꽤 까다로우면서도 상당히 해볼만한 재료.
4. 상당히 까다롭고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집중력을 발휘하면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재료
5. 여기까지 왔다면, 1~4번 재료 모두의 물성 관찰 능력을 높인다!
사실 재료가 엉키거나 탁해지거나 잘 조작되지 않을 때, 집중력이 더 높아지는 어린이들이 있고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짜증과 분노를 보이는 어린이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엔 수업이 더 가속되고 미술적 접근에 대한 더 깊은 소통이 가능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더 낮추고 잘게 쪼갠 성장과제 속에서 계획-제작-완성 과정에 대한 경험과 성취 감각을 스스로 알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어린이 속에 쌓여 있는 화의 정체에 대해 틈틈히 얘기를 나눠보는 것 또한 중요할 것 같다.
수업시간에 슬슬 연구작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을 주구장창 감시 감독하는 것보다는 그냥 주변에서 함께 작업을 하고 있음으로서 영감을 주는 것이 더 이롭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재밌는 것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을 포함해서, 미술 공간 안의 모든 작업자들이 쓰는 재료와 주제에 귀신같이 관심을 보이고 비슷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또 선생님이 잠자코 연구작에 집중하고 있으면 어린이들도 따라서 본인의 작업에 집중한다.
상당 수의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항시적인 관심을 바라면서도 그 결과로 작업이 항상 감시되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 원하는 시도를 하지 못한다. 다음 작업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몰라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냥 선생님이 정해주세요.'라고 투덜거린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침묵을 알려주고 싶다. 선생님은 항상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선생님의 간접적인 시선과 침묵이 진정한 'All IS WELL', 작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신호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불안정한, 산만한, 쉽게 짜증이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처내고 싶어하는 것만 같은 어린이들이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을 '화난' 어린이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화가 난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속에 독이 찬다는 뜻이다. 어린이들이 화가 난다는 건 긴급히 귀를 귀울여야할 일이다. 분명 누군가 상당히 오랫동안 그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고 알아주지 않았거나, 스트레스를 대면하면서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적절한 방법을 인내심 있게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어린이들을 돌보며 가르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내가 크고 작은 시도를 던졌을 때 어린이들이 보이는 반응을 관찰하며 배워나가고 있고, 그 과정은 상당한 집중과 긴장을 필요로 한다. 나이 별 발달 과정에 대해서도 경험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어른의 일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나는 이미 그런 어린이들과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것만 같다. 어린이들을 만나며 알아채게 되는 사실은, 나는 그저 성숙한 어린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라는 상태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 어린이는 예술을 한다. 다른 교과과목이나 사회분야가 아니라 미술로 그들을 가장 처음 만나고 있다는 점이 기쁘다. 또한 시차를 넘어 어린이들을 듣고 돕고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종종 지나치게 흥분될 정도로 기쁨을 느낀다. 신기한 것은 어린이들과 함께 있으면 마치 양자 이론에서 말하는 파동-입자의 이중성처럼, 나의 큰 몸과 어린 몸이 같은 공간에 중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 있다보면 그때의 낮은 시선과 좁은 몸이 종종 생생히 현현되는 듯 느껴진다. 나는 어린이의 상태와 어른의 상태가 중첩되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어린이된 감각을 느끼며 어린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어린이들도 눈치채는 것만 같다 - 눈 앞의 커다랗고 능숙한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다만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과 훈련과 보살핌을 통과하여 정교하게 자란 어린이라는 사실을.
말장난 같지만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전 단계의 마음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동심원을 그리는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을 가장 안쪽에 두고, 차차 큰 원을 그려가는 것. 정확히 말하면 원은 아닐 수도 있다.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 어느 부분은 푹 꺼지고, 어느 부분은 부풀어올라 모양이 좀 이상한 도형이 되어 있다. 어린 시절 중에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깊은 골짜기들도 있다. 어느 부분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만 나중에 열심히 메워서 꽤 괜찮은 모양으로 만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라는 사람의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어린이의 마음이 있다. 내내 그 마음만 들여다보고 살아도 곤란하지만 결코 잊으면 안 된다. 내 삶은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김소영의 어린이 가까이] 동심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동심을 간직했기에 어른이 된다 (경향신문, 2021)
한편, 이번 주의 수업은 내 한쪽 눈에 새파랗게 멍이 든 채로 진행했다. 개인 작업을 하다가 머리를 다쳤는데 피가 내려와 눈에 고인 것이다. 얼굴은 상당히 무시무시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평소보다 말을 잘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 지 당황스러워하는 어린이들에게는 "선생님 완전 눈탱이밤탱이지?"하고 먼저 말하면 자지러진다.
수업도 요령이 생겨서 이제는 몸이 덜 지치게 하는 법을 알았다. 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어지러웠지만 근무를 해냈는데, 어린이들이 따뜻하고 기발한 언어로 걱정을 해주며 에너지를 넣어준 덕분일 것이다. 또, 유독 나의 생일이 언제인지를 궁금해했다. 선물이라도 주고 싶은 얼굴이었던 걸까?
"얼만큼 아팠는 지 꼬집어서 알려주세요."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꼬집으라고 하는 어린이는 사슴같은 눈을 가졌다. "다쳤을 때 울었어요? 많이 울었어요?" 어른들은 남들 앞에서 별로 눈물을 언급하지 않는데, 어린이들은 눈물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일부일 것이다.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상상해주는 어린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어른도 자주 운다는 사실을 괜히 알려주고 싶어서 완전 많이 울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떤 어린이는 "언제 낫는대요? 빨리 좀 나으세요."하고 툴툴 말하기도 한다. "선생님 얼굴을 볼 때마다 걱정이 되어서 힘이 드니까"라는 이유를 덧붙인다. 퍼포먼스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동시대 미술의 역사를 구구절절 설명해야되나 싶어서 그냥 춤추다 다쳤다고 했더니 "춤멍쌤"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친구들은 별 할 말도 없으면서 춤멍쌤, 춤멍쌤 하고 불러서 내가 "응, 나 불렀어?"하고 대답을 해주길 기다린다.
얼마 전 졸업한 고등학교에 다녀왔다. 동창생과 교정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다 내가 고등학생 때 딱 한번 초등학교에 미술 봉사를 나간 적이 있다는, 새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하게 됐다. 그때는 프로그램도 잘 맞지 않았고 교통도 불편했던 데다가 세상이 온통 낯설다는 듯 어설프게 교실에 앉아 있는 어린이들을 대하는 것이 그리 재밌지 않은 일이어서 첫날 나가고선 슬쩍 도망쳤다. (죄송합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어린이들을 만날 준비가 꽤나 되어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추적해보자면 단서들이 상당한데, 하나씩 천천히 기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주 2 근무를 하고 있지만 이번 주는 어쩌다보니 주 4로 나가게 되었다. 학원은 지금 새로운 선생님을 구인중이다. 내가 면접을 할 때의 주변 상황과 심적 상태를 나름대로 상세히 근무 일지 0주차에 기록했었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동기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미술 대학을 졸업 후 나는 창작 지원 사업과 여러 부수 행사들에 어플라이를 해보았으나 자주 탈락했다. 이미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유학이나 오히려 취직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나는 졸업 때는 정말이지 작품에만 집중을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작품과 연애, 두 개의 소용돌이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외에도 2020년은 유독 바빴다. 오프라인 전시를 교내외로 두세번은 치뤘고, 온라인 전시를 또 두번 치뤘고, 이와 엮이는 촬영 겸 공연을 또 두번 연출했다. 상반기까지는 비영리단체와 직접 기획한 워크샵을 진행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청소년/성인 대상으로 페미니즘 미술 창작 워크샵을 오프라인으로 운영했고 포스트 코로나부터는 미술 키트를 배송하고 온라인워크샵을 진행했으며 매주 온라인 유투브 강의까지 제작했다. 하반기에는 단체 일은 중단했으나 졸업 전시를 위한 졸업준비위원회에서는 홍보팀, (코로나로 인해 급 생성된) 온라인 전시팀, 그리고 팀장 회의까지 세개의 회의를 거의 매주 원격회의로 소화했고 졸업 심사를 위해 전시에 준하는 가설치와 프레젠테이션도 준비했어야 하는 건 애교 정도.
쓰다보니 이 인간은 왜 이렇게 바쁘게 사나 싶고, 이렇게 사는 사람이면 — 당신이 어쩌면 예상도 할 것 같은데, 학교를 너무 열심히 다녀서 4학년 1학기에 이미 졸업 학점을 오버한 상태였다. 하지만 원하는 수업이 있으면 전공 수업을 빼서라도 들으러 다녔기 때문에 (헤르미온느였으면 좋았을 걸) 전공 필수 수업이 한두개 남아있었다. 그래서 이 와중에 (전 학년 중 가장 타이트한 일정과 시수로 운영되는) 일학년 파운데이션 과정과 굳이굳이 욕심으로 신청한 타과 수업 몇개를 함께 들었다. 학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딱히 낮은 학점도 아니었는데, 막 학기에 포기한 몇몇 과목 덕분에 전체 학점 평균이 떨어졌다.
이 모든 일정의 시작에 covid-19가 방문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 모든 일들은 (직전에 방역 단계 상승으로 취소될 뻔 하다가 연기되는 식의 전례없이 불확실한) 몇번의 일정 조정을 거쳐 진행되었다. 쓰다보니 어쩐지 급발진한 느낌인데 ... 아, 코로나 초에는 어머니께서 마침 해외에 1년 간 연구하다 돌아오셨는데 지병도 있으신 분이 2주간 격리 조치가 되는 바람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자취방에 갇혀서 걱정을 하다가 우울과 불안이 심해져 친구들에게 큰 걱정을 끼친 일도 있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는 마스크로 인해 피부 염증이 심하게 일어나서, 안면 대상포진 이력이 있었던 지라 일단 많이 놀랐고, 얼굴은 얼굴대로 상하고 피부과에 돈과 고통을 헌납하기도 했다. 젠장 다들 힘들었겠지만 나도 나대로 너무 힘들었다 ... 하지만 세상이 커다란 전환기를 젊은 신체로 통과한다는 감각은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여하간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이유는 ... 스스로 2020년에 상당히 충실했기 때문에 몇달간은 아파서 밖에도 잘 못 나가고 온갖 검사를 받고 병원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면 그저 미팅과 마감이 없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하지만 딱 세달이 지나자 슬슬 돈도 없고 적도 없는 무직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졸업 준비 기간 동안 졸업 동기들과 밤샘 작업이나 설치를 하며 나름대로의 피땀을 나누며 친분이 생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대면으로 만날 일이 거의 없었으며, 졸업 이후에는 더더욱, 이미 친한 입학 동기나 친구들 외에 이번에 같이 졸업을 한 동기들과의 만남은 많지 않았다. SNS에는 좋은 소식만 노출되기 마련이고.
며칠은 워커홀릭적으로 산만하게 작업을 하고, 며칠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의 생활 패턴을 발견하자마자 후다닥 정신과에 갔더니 안정제를 2주동안 받았고, 그간 치료하지 못했던 우울증에 대한 장기 복용제도 하나 받았다. 약을 먹고 나니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바이오리듬이 돌아와서 안정적으로 작업과 어플라이를 진행할 수 있었고, 알바도 구했다. 하도 어플라이를 많이 했더니 지원 사업이라는 게 그냥 마감 때 되면 내야하는 과제 같다.
또, 학원은 지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상가건물 같은 층에 빈 공간을 빌려 전시장을 만드려는 프로젝트가 있다는 것은, 이 곳에 근무를 결정하는 데에 좋은 요인이 되기도 했다. 다만 원래 중국집이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뭔가 페인트칠이라도 당장 하고싶다는 마음이 ...